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4.15 광저우 쿠데타 (문단 편집) === 리지선의 봉기 === 난데없는 상하이 쿠데타에 우한 국민정부가 얼떨떨해하고 있는 사이, 리지선과 구잉펀은 즉각 군대를 파견하여 광저우의 중화전국총공회 광동사무처, 성항노동자파업위원회, 소련 고문관의 주택 등을 포위하고 1주일 동안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 수색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황포군관학교 교관이며 중국 공산당원인 소초녀, 웅웅 등이 피살되었다. 기외에 공산당 덩페이, 리치한, 류얼쑹 등도 살해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원 600여명을 포함한 총 2,100여명이 체포되고 100여명이 살해되었으며 홍콩 파업 중 결성되었던 규찰대는 모두 해산되었다. 이때 한국인 수십명 또한 좌경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비밀리에 총살되었다고 한다. 또한 공산주의 성향의 철도 노동자 2천명이 해산되었고 리지선을 지지하는 기계공 노동조합이 철도부문을 장악하였다. 이어 리지선은 공회 개조위원회를 수립하여 공회를 장악하고 각 지방의 농민협회를 해산했다. 4월 20일, 중국 공산당은 군사독재를 타도하자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중공 광동구 위원회로 하여금 저우치젠을 소관에 파견하여 북강 지역에서 혁명투쟁을 실시할 것을 지령하였다. 이에 광동구당위원회는 팽배, 양석훈, 장선명 등 7명을 중심으로 중공 동강특별위원회를 조직, 4월 24일, 총파업을 선언했으나 리지선의 탄압으로 인하여 실행에 옮겨지진 못했다. 결국 광동노동자대표자회의는 완전히 해산되었다. 이러한 청당 행위는 무양, 상주, 산터우 등으로 계속 퍼져 나가 광동성 전역에 걸쳐 공산당원 숙청이 실시되었다. 공산당은 이에 맞서 풍평을 총사령으로, 양선집을 당대표로 임명하여 토역혁명군을 수립하여 광동의 여러 농촌에서 무장폭동을 실시하였으나 리지선에게 모두 진압당했다. 동강특별위원회 서기 [[펑파이]]도 광저우 쿠데타에 대항하여 수차례 폭동을 조직했으나 실패하고 난창으로 이동하여 [[난창 폭동]]을 조직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